낯설고 초점이 흐려지는 익숙한 상태.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. 환경은 시각적·디지털·사회적 차원에서 각각 파편화되어 있고, 우리는 흐릿해진 경계와 완전하지 않은 의식으로 역할을 해나간다. 그 속에서 우리의 시선은 표면을 미끄러지듯 지나가며, 한 사람, 장소, 상황은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흩어진다.
우리 앞에 있는 인물들은 존재하는 듯하지만, 바라보려는 순간 곧바로 흘러 사라진다.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, 실제 인물인지, 혹은 우리의 기대와 해석을 통과한 어떤 이미지인지 조차 확신할 수 없다. 공간 역시 하나의 전체로 모이기를 거부한다. 선들은 갈라지고, 방은 떠다니듯 흔들리며, 몸짓들은 해체되고, 현실은 진실과 그것이 비추어진 모습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'거의 현실적인(almost real)' 상태가 된다.
이 세계에서 공간은 단편화되어 있고, 서로를 보려는 우리의 시도 역시 마찬가지로 분절되어 있다. 과연 이러한 '거의 현실' 속에서 진정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? 자신을 방어하지 않고, 꾸며내기 위한 마스크를 벗고, 취약해지는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있을까? 취약성은 나약함의 징표가 아니라,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근본적인 조건이다. 타인에게 열릴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취약성은 단편화를 넘어 서로를 다시 인식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식이다. 이러한 개방이 없다면, 우리는 역할·아바타·디지털·사회적 소음 속에 녹아드는 또 하나의 환영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.
세 명의 작가 — 예브게니아 보로노바, 한의도, 진주은 — 는 관람자가 동시에 익숙하게 느끼면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‘거의 현실’ 세계를 구축한다. 그것은 우리가 ‘진짜’가 되기를 두려워할 때 스스로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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